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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길(리스본 + 내륙길)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길(내륙길) 24일차 Vilar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by 까미노중독자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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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배웅

 넓은 알베르게에 3명이서 잤기 때문에 코 고는 사람 없이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어제 과음한 셋이서 아침을 먹고 올라왔는데 내 침낭에 여기서 키우는 고양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사람 손을 타서 그런지 아주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디디는 네덜란드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곤히 자고 있는 녀석을 깨울 수 없었던 나를 대신해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바닥에 다시 내려놓고 씻으러 간 사이 다시 내 침낭에 올라와 자고 있는 냥이다. 일어나렴... 나 오늘 산티아고 들어가야 해..

 

산티아고로 가는 길

 고양이의 따뜻한 배웅을 뒤로한 채 산티아고로 출발했다. 산티아고로 들어가는 마지막 날은 기분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이제 정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왜 이 길을 걸었을까? 

 디디는 먼저 출발했고 페트릭은 할 일이 있어 나중에 출발하기로 했다. 조금 걷다 보니 디디가 산 중턱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나도 옆에 앉아 물안개 비슷한 풍경을 서로 바라보며 같이 멍 때렸다. 평화로웠다. 우리가 나중에 네덜란드에서 만났을 때 디디는 이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의외로 조용했다. 그리고 날씨도 화창하니 걷기 좋았다. 디디를 만나서 같이 걸었다. 디디는 나와 걷는 속도가 비슷했다. 우리는 그렇게 산티아고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때로는 얘기를 하며 때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산티아고로 향했다. 산티아고에 다가갈수록 기분이 더 오묘해져 갔다.

 포르투갈 길 마지막 날이니 사진을 많이 담아본다. 언제 또다시 포르투갈 길에 와볼 수 있을까?

깨져버린 두 자릿수

 그렇게 디디와 함께 걷다 보니 10km가 깨진 구간이 왔다. 결국 와버렸다. 기분은 역시 즐겁다기보다는 이상하다. 

씩씩한 디디의 뒷모습. 거침없이 걸어간다.

 디디 배낭에 달려있는 가리비는 산티아고에 도착한 우리에게 훌륭한 술잔이 되어주었다.

 디디도 리스본에서 시작했다. 나보다 3일 정도 일찍 출발했지만 도중에 며칠 쉬면서 걸었기 때문에 나와 같이 마지막 날에 같이 걸을 수 있었다. 이때의 거의 모든 순례자의 발은 아프지 않다. 걷는데 정말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씩씩하게 걸어간다.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 어느 마을의 건물이었다. 부엔까미노 어플에 방문할 가치가 있다고 나와있었다. 마지막이니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같이 사진을 몇 장 찍고 쉬지 않고 다시 걸었다. 이제 산티아고에 들어갈 차례이다.

 

Santiago de Compostela

 이번에도 무사히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길에서 사귄 친구들과 성당 앞에서 와인을 마시기 위해 잠시 와인상점에 들렀다. 친구들은 먼저 성당에 도착해 있었다. 내가 도착한 순간 친구들이 박수와 함께 나를 환영해 주었다. 이때의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나는 해냈다. 프랑스길에서는 눈물이 났지만, 포르투갈 길을 끝낸 지금은 기쁨의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디디와 나는 내가 사 온 와인을 가리비에 따라서 먹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대성당 앞에 모인 친구들과 함께 같이 마셨다. 이 순간만큼은 국적이고 인종이고 다 필요 없다. 친구가 되었고, 서로 축하해 준다.

 지친 발을 이끌고 여기까지 도착한 멋진 친구들이다. 무거웠던 배낭을 내려놓고, 답답했던 신발을 벗어놓으며 얘기를 하고, 축하하고, 술을 마셨다. 내 가리비로 많은 친구들이 돌려마셨다. 우리나라만 술잔을 돌리지 않는다. 세상 사는 거 다 똑같다.

 도착한 기념으로 산티아고 대성당을 찍었다. 언제 봐도 참 멋있는 성당이다.

 다들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는 중이다. 기념사진도 찍고 축하하고 있다. 저기 누워서 본 하늘은 정말 높고 아름다웠다. 날씨가 좋아서 대성당이 주는 감동도 배가 되었다. 여기 도착하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한국인들도 만났다.

 밤에도 조명이 산티아고 대성당을 비춰준다. 뒤풀이를 하고 성당에 다시 와보니 체코친구가 혼자 사색에 잠겨 성당 앞에 앉아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다시 성당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한식이 먹고 싶어서 누마루에서 저녁을 먹은 후, 이 술자리에 합류했다. 이미 마지막 날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으며,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다. 들어가자마자 다시 한번 환호를 받고, 같이 술자리에 합류해 마지막날을 함께했다.

 그렇게 또 기념사진을 한 장 남겨놓았다. 이미 그룹채팅방이 있기 때문에 사진은 매일매일 공유하고 있었다. 각자의 나라로 떠난 친구들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지금도 안부를 물어보고 있다. 나는 다음 날 부모님과 마드리드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벽까지 같이 있지는 못했다. 들어보니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다음 날 새벽기차를 타기 위해 짐을 쌌다. 짐을 싸면서 아쉬우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포르투갈 길 초반 멤버 4명과 엔리케, 후반부에서 만난 여러 국적의 친구들. 이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고 좋았다. 분명 이상한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즐겁게 포르투갈 길을 끝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이 이들을 보는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고, 분명히 다시 만날 것이라 믿는다.

 11월에 갑작스럽게 떠난 포르투갈 순례길은 24일 만에 마무리되었다. 초반에 걱정도 많고, 비도 많이 오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마지막은 웃으며 끝낼 수 있었다.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지만, 걷다 보니 좋은 일이 가득했다. 좋은 길을 걷게 해 준 까미노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좋은 인연을 만들게 해준 것에도 감사한다. 이렇게 나는 포르투갈 길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후에 걷는 모든 이들도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고 즐기기를 바란다. 부엔까미노! 즐거운 11월의 여행이었다. 따뜻한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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